60년대 초반의 나이에도 "All American boy as an adult. 전형적인 미국 소년이 자라나서 된 성인" 처럼 보였던 콜린즈는 UCLA대학을 나오고 스포츠, 특히 육상과 구기를 좋아했으며, 토목공학을 전공한 후 2년동안 그 분야에 종사하는 등 전형적인 미국사람의 길을 걸었다. 그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이상적인 미래관을 지니고 있었는데 "저기 바깥 세상은 좋은 곳이고, 나는 그 세상을 더욱 더 좋게 만들 것이다."와 같은 생각은 그가 훗날 사회봉사자로서의 헌신적 노력을 기울인 것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결코 그의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은 "치열한 경쟁사회가 아니라, 성취하고 재미있게 살고 즐기는 곳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25세때 외식사업 시작
호텔과 외식산업에 성공한 모든 사업가들이 그러하듯 콜린즈 역시 어려운 시기와 고난의 대가를 지불하면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전공분야에서 뛰어나와 자신의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최초의 사업은 25세 때 맥도날드 형제가 판매하기 시작한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밀크쉐이크를 파는 것과 같은 영업형태의 셀프서비스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하루 17시간, 일주일내내 영업을 하면서 햄버거는 19센트, 프렌치프라이는 17센트, 밀크쉐이크는 20센트에 비교적 싼 가격으로 팔았으며, 두 개를 한 개의 가격으로 또는 특별상품을 절반가격에 판매하여 시식을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레스토랑은 곧 높은 매출액을 올리면서 Hamburger Handout 이라는 작은 레스토랑 3개를 더 개점하는 등 외식사업에서 그의 수단을 발휘하였다.
시즐러 인수로 본격적 외식사업 진출
1960년 콜린즈가 샌더즈를 만나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사업을 시작한 이 때는 그에게 일대 전환의 시기였다. 2년후 콜린즈는 남부의 캘리포니아지역을 지휘하는 가맹본부이면서 가맹자로서 본격적인 외식사업의 프랜차이즈를 시작하였다.
1970년에는 콜린즈와 그의 동료들은 시즐러 패밀리 스테이크 하우스를 89만 9천달러에 인수하였다. 이렇게 급속한 성장을 거듭한 끝에 그가 운영하고 있는 시즐러(156개 점포)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33개 점포)의 주식 30만주가 1주당 18달러에 거래되는 커다란 사업적 성과를 거두었다.
혁신가인 콜린즈는 경제적인 스테이크 하우스인 시즐러를 가재와 새우, 샐러드바, 맥주, 와인을 추가하면서 디너하우스로 바꾸었으며, 프랜차이즈 개념에 입각하여 경영하였다. 시즐러는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테이크 하우스로서 샐러드바, 해산물요리, 옥외객장으로 꾸며졌다. 곧이어 매출은 증가하였고, 중간규모의 체인레스토랑으로 성장하였다.
1983년까지 미국의 39개 주에 5백개 이상의 시즐러가 생겼고, 일본, 괌,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프랜차이즈 시즐러가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1995년 대한제당에서 시즐러를 도입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 콜린즈 푸드 인터내셔날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2백 40개의 KFC레스토랑을 운영하였다. KFC레스토랑의 절반은 Southern California 지역에, 그리고 나머지 레스토랑은 플로리다. 일리노이즈, 오레곤, 텍사스, 퀸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었다. 5개의 공급센터에서는 프랜차이즈된 레스토랑에게 동일한 품질의 음식을 제공하였다.
패스트푸드점의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사항이 중요하다.
시간, 마케팅, 그리고 가치. 콜린즈는 대량 마케팅 전략을 펼치면서 고객에게 가격과 가치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역설하였다. 미래의 흐름을 예상하고 콜린즈와 그의 동료들은 시즐러 레스토랑을 보다 진보시키는 다양한 개념을 설정하였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회사업에 적극적인 외식산업인
대부분의 호텔 외식산업의 거장들이 사업에 너무 바쁘고, 또한 독단적인면이 많아 각종 사업관련 협회 등에 참가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콜린즈는 캘리포니아 레스토랑협회와 미국 레스토랑협회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각종 기금을 모으는 운동의 회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의 호텔 경영학과를 위한 건물을 짓기 위해 2백만 달러를 모금하였는데, 그 중 1백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업스타일은 콜리즈가 회장으로 있는 회의를 주도할 때 잘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는 매우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며 목표달성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회의는 항상 정시에 시작하였고, 간략하게 요점만을 토의하도록 효율적인 진행을 하였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명백한 명분과 도전의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모두 미국의 외식사업과 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전형적인 미국 소년이 자라나서 될 성인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따라 그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사업가적 자질은 바로 단순한 것에서 생성되기도 한다는 것을 콜린즈는 보여줬다.
끝으로 이글을 읽는 모든 네티즌분들께서는 일상 생활에서 모든일을 단순화 하길….